
한눈에 보는 핵심 5가지
- AI로 광고 아이디어와 시안을 사실상 무한히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정작 무엇을 실제로 제작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멈춰 서는 팀이 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 크리에이티브 제작사 마이크티비의 '브랜드 퍼스펙티브 2026' 보고서는 이 혼란이 AI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원래 있던 약점을 AI가 드러내고 키웠다고 분석한다.
- 모두가 같은 도구에 비슷한 입력값을 넣으면 결과물도 서로 닮아간다. 차별화의 승부처가 만드는 속도에서 무엇을 고르느냐 하는 판단력으로 옮겨갔다.
- AI로 주니어 업무를 대체하면 당장은 효율적이지만, 실무를 거치며 안목과 판단력을 키울 인재의 성장 경로가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 성과를 내는 조직은 가장 빠르거나 자동화를 가장 많이 한 곳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버릴지 가려내는 판단의 힘을 지켜낸 곳이라는 결론이다.
광고비를 거의 들이지 않고도 하루에 시안 수백 개를 뽑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런데 정작 현장의 크리에이티브 팀들은 예전보다 결정을 더 못 내리고 있다. 만들 수 있는 것이 늘어날수록, 그 안에서 하나를 골라내는 일이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최근 나온 한 업계 보고서가 이 역설을 정면으로 다뤘다.
무한히 만들 수 있게 되자, 결정을 못 하는 팀이 생겼다
핵심은 제작 능력이 아니라 판단이다. 무한한 변형안 앞에서 무엇을 만들지 고르는 일이 새로운 병목이 됐다.
크리에이티브 제작 파트너사 마이크티비는 최근 '브랜드 퍼스펙티브 2026' 보고서를 냈다. 헬로프레시, 웨이페어, 도어대시, 인튜이트, O2, 버라이즌 등 여러 브랜드의 사내 크리에이티브·마케팅 리더를 인터뷰해 정리한 결과다.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AI로 아이디어와 광고 소재를 거의 무한정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무엇을 실제로 제작할지 정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헬로프레시의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제임스 허스트는 "일부 팀은 실제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거의 비용도 시간도 들이지 않고 사실상 무한한 변형안을 만들 수 있게 된 탓이다.
허스트는 아이디어가 거듭된 테스트와 여러 사람의 의견, 합의 과정을 지나는 사이 정작 만든 사람이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잃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고를 수 있는 안이 많아질수록, 하나를 밀어붙일 결단은 오히려 흐릿해진다.
진짜 문제는 AI가 아니라 무뎌진 '고르는 힘'이다
이 혼란의 뿌리는 AI가 아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려내는 업계의 근육이 이미 약해져 있었다는 진단이다.
보고서는 좋은 아이디어를 골라내는 힘이 AI가 널리 쓰이기 전부터 약해지고 있었다고 분석한다. 폭넓게 아이디어를 낸 뒤 엄격하게 추리고, 고른 하나를 끝까지 밀고 가는 과정이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기술 덕분에 여러 대안을 더 쉽고 싸게 만들 수 있게 되자,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부담을 피하기도 쉬워졌다. AI는 이 빈틈을 메운 것이 아니라 더 크게 벌려 놓았다.
여기에 또 다른 위험이 겹친다. 웨이페어의 크리에이티브·프로모션 총괄 마이크 피어슨은 "모두가 같은 도구를 사용하고, 비슷한 입력값으로 더 많은 것을 만들 수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모든 결과물이 비슷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같은 도구에 비슷한 지시를 넣으면 산출물도 닮아간다. 그래서 차별화의 승부처가 '얼마나 빨리 만드느냐'에서 '무엇을 고르느냐'로 옮겨간다.
주니어를 줄이면 미래의 안목도 함께 사라진다
AI로 주니어 업무를 대체하는 흐름은 당장의 효율만 보게 만든다. 조직의 미래 안목이 자라는 길목을 막을 수 있다.
보고서는 AI로 주니어 직군을 대체하려는 움직임에 우려를 나타낸다. 주니어 시절은 단순히 결과물을 찍어내는 단계가 아니라, 실무를 거치며 오랜 시간에 걸쳐 안목과 감각, 판단력을 키우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단계를 줄이면 앞으로 크리에이티브 조직을 이끌 사람이 자라나는 과정 자체가 약해진다. 지금 아낀 인건비가 몇 년 뒤 판단력의 공백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다.
효율이 늘었다는 말도 곱씹어 볼 대목이다. 인튜이트의 최고마케팅책임자 토머스 라네세는 "우리 모두 AI 덕분에 더 효율적으로 일하게 됐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그 어느 때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들 수 있는 양이 늘면 검토하고 다듬어야 할 양도 함께 늘어난다. 도구가 빨라졌다고 해서 일이 저절로 줄지는 않는다.
AI 시대에 성과를 내는 조직의 조건
성과를 가르는 것은 속도나 자동화의 양이 아니다.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버릴지 정하는 판단력이다.
마이크티비 창립자 엘런 위트레흐트는 크리에이티브 팀이 던져야 할 질문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제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은 선택지를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다. 어떤 아이디어가 실제로 만들어질 가치가 있는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는 인터뷰에 참여한 리더들이 AI를 유용하게 쓰면서도, 속도와 생산량이 안목과 판단력, 하나를 선택하는 확신을 대신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전한다.
보고서가 그리는 경쟁력 있는 조직의 모습은 이렇게 정리된다.
- 가장 빠른 조직이 아니라, 만들 것과 버릴 것을 분명히 가르는 조직
- AI로 아낀 시간을 더 많은 산출물이 아니라 완성도를 높이고 자유롭게 실험하는 데 쓰는 조직
- 주니어를 단순 비용이 아니라 미래의 안목을 키우는 투자로 보는 조직
자주 묻는 질문
Q. 작은 회사나 혼자 일하는 마케터도 이 문제를 겪을까?
A. 규모가 작을수록 오히려 더 크게 겪을 수 있다. 혼자서 AI로 시안 수십 개를 만들면 검토와 선택을 함께 나눌 동료가 없어 결정이 더 늦어진다. 만들기 전에 이번 콘텐츠의 목표와 판단 기준을 한 문장으로 먼저 정해두면 선택이 한결 빨라진다.
Q. 그러면 AI로 시안을 많이 만드는 것 자체가 손해인가?
A. 그렇지 않다. 많이 만들어 보는 것 자체는 분명히 쓸모가 있다. 문제는 많이 만드는 데서 멈추는 것이다. 넓게 펼쳐 본 뒤 기준을 세워 빠르게 좁히는 두 단계를 함께 갖춰야 무한한 선택지가 자산이 된다.
Q. 판단 기준은 어떻게 세워야 하나?
A. 캠페인의 목표 하나를 먼저 정하고, 그 목표에 비춰 각 안을 걸러내는 방식이 기본이다. 브랜드다움, 목표 부합, 실행 가능성처럼 미리 합의한 몇 가지 잣대를 두면 선택지가 아무리 많아도 흔들리지 않는다.
Q. 주니어를 줄이지 말라는 건 비용 측면에서 비현실적이지 않나?
A. 무조건 줄이지 말라기보다 주니어의 역할을 다시 설계하라는 쪽에 가깝다. 단순 제작은 AI가 맡더라도, 판단과 선택을 배우는 실무 경험은 남겨둬야 몇 년 뒤 조직을 이끌 사람이 자란다.
고르는 힘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
AI는 만드는 일을 놀랄 만큼 싸고 빠르게 바꿔 놓았다. 그만큼 만드는 능력 자체는 더 이상 뚜렷한 차별점이 되기 어렵다. 남는 것은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무엇이 만들 가치가 있는지 가려내는 안목, 그리고 하나를 골라 끝까지 밀어붙이는 확신이다. 도구가 아무리 빨라져도 이 판단만은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지금 마케팅 팀이 점검해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잘 고를 준비가 되어 있느냐다.







